와이탕이 조약 기념지
Waitangi Treaty Grounds

1840년 2월 6일 영국 왕실과 마오리 추장들이 와이탕이 조약에 서명한 곳입니다. 1834년의 조약관, 1940년 조각된 집회소 '테 화레 루낭아', 서명 장소를 표시하는 깃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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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
- 뉴질랜드
- 위치
- 뉴질랜드 와이탕이
- 지어진 해
- 1840
빠른 답변
와이탕이 조약 기념지, 어디에 있어요?
뉴질랜드 와이탕이에 있어요.
와이탕이 조약 기념지, 언제 지어졌어요?
1840년에 지어졌어요.
와이탕이는 뉴질랜드 북섬 베이오브아일랜즈에 있는 작은 마을로, 황가레이에서 북쪽으로 약 60km 떨어져 있어요. 뉴질랜드 역사를 바꾼 두 문서가 이곳에서 서명됐어서 유명해요. 1835년 10월 28일 뉴질랜드 독립 선언과, 1840년 2월 6일 와이탕이 조약이에요. 마오리어 이름은 '시끄러운 물' 또는 '우는 물'이라는 뜻으로, 가까운 하루루 폭포에서 왔을 거라고 해요.
와이탕이 조약은 영국 왕실 대표와 마오리 부족장들이 맺은 약속이에요. 영국 주재관 제임스 버스비의 집 마당에 세운 큰 천막에서 처음 서명했고, 그 뒤 더 많은 부족장의 서명을 받으려고 나라 곳곳으로 갔어요. 모든 부족장이 서명한 건 아니고 미루거나 거부한 사람도 있었어요. 오늘날 조약 부지는 누구나 방문할 수 있고, 이 조약은 지금도 나라의 건국 문서로 이야기돼요.
1840년의 서명
조약 논의는 1840년 2월 5일 시작됐어요. 윌리엄 홉슨 부총독이 버스비의 집 앞에서 마오리와 유럽 사람 300명쯤에게 제안서를 읽어 주었어요. 처음에는 많은 부족장이 왕실에 권한을 넘기는 데 반대했어요. 호키앙가의 타마티 와카 네네와 동생 에루에라 마이히 파투오네 같은 부족장은 찬성했어요. 회의는 2월 7일에 이어질 예정이었지만 일부 부족장이 먼저 서명하자고 해서 2월 6일에 서명이 이뤄졌어요. 조약은 앞서 나온 독립 선언(헤 와카푸타나)을 이어받은 것이지 없던 일로 만든 건 아니에요.
조약 부지에서 볼 수 있는 것
이 부지는 1934년부터 일반에 열려 있어요. 제임스 버스비와 아내 아그네스가 살던 '조약의 집'은 1940년 건국 100주년을 앞두고 1930년대에 복원됐어요. 가까이에는 조각이 새겨진 마오리 집회소 '테 와레 루낭가'가 1939년에 완성돼 1940년 2월 6일 문을 열었어요. 진짜 마라에는 아니고 조각된 집회소예요. 이후 2016년에 테 콩아후 와이탕이 박물관, 2020년에 테 라우 아로하 시민권의 대가 박물관이 문을 열었어요.
오늘날의 조용한 마을
와이탕이는 면적 약 17㎢의 시골 마을이고 2023년 인구조사에서 인구가 57명이었어요. 유명세에 비하면 아주 작은 곳이에요. 파이히아 마을과 바로 붙어 있고 강어귀의 다리로 이어져 있어요. 진짜 마라인 '테 티이 와이탕이'는 강 건너 테 티 만에 있어요. 강어귀의 와이탕이 부두에서는 러셀과 파이히아를 오가는 여객 페리가 다녀요.
재미있는 사실
- 1840년 첫 공개 모임에는 약 300명이 참석했어요.
- 와이탕이는 '시끄러운 물'이라는 뜻이에요.
- 2023년 인구조사에서 와이탕이에 사는 사람은 57명뿐이었어요.
- 부지에 있는 큰 전쟁용 카누를 저으려면 노꾼이 적어도 76명 필요해요.
지구본에서는
조약의 집과 조각된 회의장, 깃대를 보여 줘요. 서명 장소를 알리는 깃대를 찾아보세요.
퀴즈 타임
와이탕이 조약 기념지와 하아몽가 아 마우이, 어느 쪽이 더 오래되었을까요?
정답 보기
정답: 하아몽가 아 마우이 (1840 대 1200) 하아몽가 아 마우이 →
지구본에서 가까운 곳
참고한 자료
업데이트: 2026-10-14





